마음이 흘러가는 곳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대개 조용히 시작된다. 알아차렸을 땐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다. 어느새 ‘나도 이 일을 해보고 싶다’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. 누군가와 함께 마시던 따뜻한 커피 한 잔, 어디선가 스쳐 지나온 볶는 향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 이 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. 그렇게 회사원의 삶에서 방향을 틀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, 벌써 6년 차 바리스타이자 서브 로스터로 일하고 있다. 바리스타로 일하던 시간은 늘 궁금증의 연속이었다. 내가 내리는 한 잔의 커피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, 그 처음과 끝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싶었다. 그 과정까지 이해해야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한 잔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. 그 질문들이 나를 로스팅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. 과정이 천천히 만들어가는 방향 로스팅의 매력은 분명하다. 커피를 다루면서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과정이라는 점. 오직 열과 바람으로 생두의 잠재된 향과 맛을 끌어낸다. 때로는 생두를 ‘어르고 달랜다’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.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이끌어가는 일. 그 미묘한 균형 속에서 커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. 아직은 배우는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블렌드를 만들어보고 싶다. 각각의 개성이 분명한 맛들을 하나씩 모아 하나의 조화로운 컵으로 완성하는 일. 그 한 잔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 같다. 로스터로서의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됐다. 여전히 서툴고,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그만큼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세계이기도 하다. 오늘도 작업대 앞에 서서 조금 더 나은 커피의 향과 맛을 상상해본다.